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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 것인가 : 아파트? 공동주택?
  작성자 : M.A건축 작성일 : 2013-02-05 조회수 : 8115
 
 

어디에 살 것인가 : 아파트? 공동주택?

공동주택의 일반적인 의미는 공동으로 생활하는 집이다. 공동주택은 벽과 바닥을 공유함으로써 제한된 대지에 보다 많은 주거 단위를 배치할 수 있다는 1차적인 의미 이외에도 단지의 내/외부 공간을 함께 체험하며 동질감을 가지고 교류할 수 있다는 보다 진일보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 주거의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의 형태를 띠고 있으므로 공동주택은 이미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공동주택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유럽에서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심화되면서 공동주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많은 주거가 파괴되어 급속하게 대량의 주택 공급이 요구됨에 따라 현대적인 도시계획에 의한 공동주택이 현실화되었다. 산업혁명 시대의 공동주택의 문제는 주로 위생에 관련되어 있었는데 20세기 초기의 파리를 예로 들면 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햇볕이 제대로 들지 않아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흑사병에 많은 인구가 희생된 시기였던 것이다. 이런 위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건축가들이 기존의 막혀 있는 중정형 배치를 지양하고 채광과 통풍이 개선된 배치안을 찾게 되었다.

이후 21세기 중반에 CIAM(근대 건축을 위한 국제 회의)의 주된 관심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 되었고 르 코르뷔지에는 아테네 헌장에서 <모든 성장을 관장하는 태양은 그 광선을 퍼뜨리기 위해 모든 주거의 내부를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라고 주장함으로써 빛을 우리 인체에 근원적이고 활력을 주는 요소로 인식하여 공동주택에 반드시 충분히 도입할 것을 강조하였다. 코르뷔지에는 공동주택에 대한 연구를 더 진행하여 파리시의 중심부 상당 부분을 빛나는 도시로 개조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연구의 기본이 되는 생각은 기존 저층 아파트의 문제점이라 여겨지는 짧은 인동간격을 개선하여 주거동을 고층화하고 이에 따라 지상에 많은 외부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생각은 2차대전 이후에 대도시에 많은 주거를 손쉽게 공급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도시의 위성도시에 많은 그랑 앙상블(Grands Ensembles)이라는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도권에 1, 2기 신도시가 건설되었고 전국에 수많은 택지개발지구가 계획되어 공동주거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에서는 2000년을 전후해서 그랑 앙상블이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물론 프랑스에서 파리의 외곽에 들어선 고층 주거단지가 흑인이나 아랍계가 많이 입주하여 황폐화시키는 바람에 중산층의 외면을 받아서 주거단지로서의 가치를 많이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그랑 앙상블을 폭파공법으로 해체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으로 회상에 잠기던 한 프랑스인의 인터뷰 장면이 인상깊게 뇌리에 남아 있다. 이후에 프랑스의 공동주택은 건축가들의 주거에 대한 고민이 반영되어 다양하고 개성있는 모습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 신도시는 양호한 주거 환경과 비교적 짧은 출퇴근 거리, 그리고 특히 투자가치와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도시가 20년이 더 지나고 곧 재건축을 맞을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면 과연 어떤 모습의 공동주택으로 변모할 지 생각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투자의 붐이 사그러들고 경기가 얼어 붙으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면서 하우스푸어가 양산되고 있다. 매매보다는 전세를 선호하여 전세가가 매매가의 상당 수준에 육박해 있다. 이런 상황을 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집 값이 30% 가량 하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집을 사지 않는 이유를 단지 투자가치가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기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비싼 명품들이나 외제차 등은 매년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20대 갓 취업한 새내기 직장인도 구매에 동참하고 있지만 집을 살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똑같은 평면과 배치 방식을 그대로 계속해서 사용하여 집을 지었고 또 시장에 내놓았다. 그 상품은 내놓는 대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고 여기에 만족해서 계속 복제 생산하였다. 물론 설계사나 건설사 모두 상품기획팀이 있고 주부 모니터단을 운영하기도 하여 상품성을 높였다고는 하나 그것은 지극히 부분적인 페이스 리프트에 불과한 것이다.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 건축 이외의 부분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해 내고 있는지 생각해본다면 건축분야, 특히 공동주택에서의 정체현상은 오히려 신기할 정도이다. 물론 앞서도 언급했지만 현재의 노력을 무조건적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존의 방식으로는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와야만 한다.

공동주택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현재의 상황을 개선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비록 공동주택이 개인주택만큼 유니크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각각의 단지별로 혹은 동별로 개성을 가진 유니트, 동플랜, 배치를 적용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어 내어야만 할 것이다. 우리집이나 옆 동네나 서울이나 대구나 차이가 없는 주거의 모습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100만 세대도 넘을 전국의 30평 아파트에서 몇 백만 명이 같은 공간을 같은 동선으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어질 정도이다.

지금의 아파트로 대변되는 공동주택의 패러다임은 이제 바뀌어야만 한다. 더 이상은 땅값과 용적율 그리고 사업성의 논리에 우리의 주거가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똑같은 공간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서 어찌 창조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최대한의 이윤을 노려 갈수록 고층화시키는 논리는 고층이 되면 그만큼 넓은 외부공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그만큼 외부공간을 이용하지는 않는다. 휴먼 스케일이 상실된 커다랗고 빈 공간일 뿐이다. 요즘은 아파트 지하에서 주차한 후 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리면 그만이다. 이웃과 마주치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커뮤니티의 의미는 상실되고 있다. 설계사건 시공사건 개성 넘치는 주거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여 많은 아파트 수요자들에게 제공하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근 이런 아파트의 획일적인 모습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 사이에서 탈 아파트 바람이 불고 있다. 타운하우스, 전원주택, 동호인주택, 땅콩주택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집짓기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 이런 주택들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망설여지는 일이다. 아파트의 장점인 관리와 방범 그리고 환금성을 포기하는 것 또한 상당한 용기를 요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주택들은 거의 도시의 편의생활을 누리기 불편한 입지조건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으로 관리가 편하고 도심 접근성이 좋다면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개인주택의 장점과 공동주택의 장점을 각각 결합한 합리적이고 개성있는 주거가 대안이 되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그 날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김연준, 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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