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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볼리즘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작성자 : M.A건축 작성일 : 2012-11-02 조회수 : 3032
 
 

메타볼리즘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근래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일본에서 비롯된 메타볼리즘이다. 주지하듯 메타볼리즘은 1960년에 동경에서 개최된 세계 디자인 회의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변화와 생성을 모티브로 하는 건축 운동으로 서구의 건축가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일본 건축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새삼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지난 운동을 들추어 보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캡슐이나 플로팅 건축 등 메타볼리즘의 형태적인 면을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운동의 배경을 통하여 현재 우리의 건축 현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메타볼리즘이 태동되는 시기에 대한 문제이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경제는 연 10% 정도 성장하는 호황을 맞는 시기이다. 이런 호황기에 산업체, 공기업, 정부 등에서 많은 지원을 받아서 메타볼리즘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단지 작품 뿐 아니라 다양한 연구 용역까지도 수행할 정도로 큰 지원이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이 운동을 주도한 건축가들이다. 동경대 교수였던 당게 겐조가 당시 47세이지만 그는 이 때 잠시 미국에 초빙교수로 가 있어 정신적 후원자 역할을 할 뿐이었고 실제로는 기쿠다케(32세), 이소자키(29세), 구로카와(26세) 등과 같은 동경대 당게 연구실 출신의 신출내기 청년 건축가들이 밤샘 토론을 거쳐 방향을 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메타볼리즘을 구체화하였으며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약관의 나이에 이런 건축적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들 중 몇몇은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미디어 스타로 주목을 받게 된다.

  또 하나의 관점은, 이 운동의 정신에 관한 것이다. 메타볼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컨텐츠의 출발을 반드시 전통에서 이끌어내려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즉물적으로 전통을 해석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세 신사의 20년 주기로 된 소멸과 재생성 및 변화에 주목하여 형태적으로 전혀 다른 방식의 건축에도 그들의 전통을 접목하여 메타볼리즘을 전개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그 외연을 들 수 있다. 메타볼리즘에는 비단 건축가에 국한되지 않고 산업디자이너, 건축잡지(신건축) 편집장,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축가 자신만의 편협한 사고가 아닌 여러 분야와 결합하여 자신의 사고를 표현하고 전달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건축적 상황과 어떻게 비교해 볼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시기의 문제에서 우리나라가 유례없는 호황기였던 80년대를 돌아보면 이 당시에 많은 건축가들이 김수근과 김중업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나래를 펴게 되는데 이 와중에 4.3그룹이라는 건축가 그룹이 나타나서 각종 전시회와 잡지에 자신들의 작품을 내보이기 시작하였다. 많은 학생들은 이 그룹의 활동에 동경과 열망을 갖게 되었고 잡지에서 그들의 작품과 현란한 수사들을 보며 매혹되었다. 그 건축가들 중 상당수가 그 이후로 다양한 작품들을 하면서 스타로 떠올랐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건축관과 가치관을 표출하면서 책도 내고 명성을 더욱 쌓아나가게 되었다. 물론 여러 측면에서 특정 학맥과 인맥의 도움이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으리라.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 훌륭한 건축가들이라고 인정을 해 주고 싶다. 어쨌든 열심히 건축을 해 왔기 때문에...

 

  그러나 여기서 불편한 것은 앞서 메타볼리즘의 상황, 즉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누렸던 시대적 배경과 하나의 그룹으로 자신들을 표현하고 스타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유사했지만 43그룹이 건축 전반에서 충분한 파급효과를 가져오지 못하고 잊혀져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컨텐츠가 충분하지 않았고 공동의 이념이 부재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과연 4.3그룹에서 그 어떤 미래의 건축적 비전을 제시했던가? 우리만의 건축을 해 보고자 진정으로 노력해 보았던가? 아니면 다른 분야와 함께 외연을 확대했던가? 또 아니면 젊은 건축가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던가?

  현재 우리의 젊은 건축학도, 건축인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과 형편없이 낮은 설계비 등으로, 개업하여 자신만의 건축을 펼치기도 전에 좌절해 버리고 대규모 설계회사로 가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희망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기성 건축가들은 여전히 유명세를 누리고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다음 세대에 좌절을 가져다주는 상황에 대해서 모두 입 다물고 나몰라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우리의 건축, 한국적인 건축,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건축을 할 수 있을까하는 자조감이 든다.

 

  물론 메타볼리즘이 그 자체로 완전하지 못하고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건축사에서 상당한 의의 및 파급효과를 가지며 일본 건축가들의 전체적인 위상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렘 쿨하스도 버젓이 자신의 일부 작품이 메타볼리즘 건축가들에 영향을 받은 것을 드러낼 정도이고 세계 각지에서 플로팅 건축을 시도하는 여러 프로젝트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마도 일본에서 안도 다다오, 도요 이토, 가즈요 세지마 등 세계적으로 자신의 건축을 각인시키고 있는 건축가들이 배출된 것은 자격증을 가진 건축사에서 건축가의 지위를 이끌어낸 메타볼리스트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쪼록 교육계에서는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은 창의적인 활동을 많이 하여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부심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성 건축가들의 책임있는 솔선수범을 기대한다.

                                (김연준, 목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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